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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Manage episode 379633530 series 96198
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제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제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읍내로 이사 와 우리는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후문에는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어머니가 텃밭을 가꾸셨습니다. 어머니가 텃밭을 만들기 시작하자 주변에 다른 분들도 하나둘씩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공터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텃밭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몇 년 후 어머니는 동네 이웃들과 함께 놀이터 뒤편 공터에 땅 주인의 허락을 받아 다시 텃밭을 장만하셨습니다. 이맘때면 상추며, 부추며 먹 거리를 재배하여 제가 친정 가는 날이면 저에게도 나눠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 텃밭에마저 전원주택이 들어서면서 그 땅을 돌려주게 되었습니다. 칠순이 훌쩍 넘은 연세지만, 소일거리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소소한 일상이었는데, 더 이상 텃밭을 가꾸지 못하게 되어 상실감이 커 보였습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친정을 갔습니다. 가족들이랑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텃밭에 ‘상추가 싱싱한데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텃밭이 있어요?” “텃밭이 생겼단다”아파트를 조금 벗어나 동사무소를 돌아가니 공사 현장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 그 가장자리에 텃밭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싱싱한 상추가 맛깔스럽게 자라고 있었고 그 옆에 아기 호박도 있었습니다. 옆에는 부추가 자라고, 고추나무에 어린 고추가 열린 것도 보았습니다. 감자도 한 고랑, 대파도 한 고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말끔하게 정비된 어머니의 그 텃밭을 마주하는 순간, 어머니의 칠전팔기 인생이 스치듯이 지나갔습니다. 그 옛날, 어머니가 다니던 당면공장이 부도가 나서 다시 신발공장에 다녔는데 그 공장마저 부도가 나서 일자리를 잃은 후 타일공장에서 일했지요. 좌절을 딛고 일어서던 오뚜기 인생이 마치 어머니의 텃밭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식 키우듯이 작물들을 애지중지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소소한 행복이 잔잔하게 일어나기를 바라며 흐뭇한 마음으로 친정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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