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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에피소드, 그래픽, 팟캐스트 설명을 포함한 모든 팟캐스트 콘텐츠는 CBS 또는 해당 팟캐스트 플랫폼 파트너가 직접 업로드하고 제공합니다. 누군가가 귀하의 허락 없이 귀하의 저작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여기에 설명된 절차를 따르실 수 있습니다 https://ko.player.fm/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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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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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문득 고택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 구례 운조루로 향했습니다. 유물 전시관 앞에 주차하고 내리니 몇 걸음 가지 않아 연지 연못이 보입니다. 연못에 잠시 머물렀던 발길을 고택으로 돌리니 우뚝 솟은 대문은 지리산의 끝자락을 향해 열려 있고 대문 곁 행랑채엔 누구나 사용해도 좋다는 '타인능해他人能解' 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뒤주가 보입니다. 대문 양옆으론 서 행랑과 동 행랑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에선 종종거리며 오갔을 하인들의 모습과 고택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음을 눈으로 짐작해 봅니다. 마당 오른편의 커다란 앵두나무는 가을 고택의 고즈넉함과 더불어 노란 화관을 뒤집어쓰고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었습니다. 찻잔이 놓여 있는 사랑채에선 누군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지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새어나옵니다. 그 소리마저도 한 폭의 수채화였습니다. 사랑채를 뒤로 하고 안채로 들어가 마루에 앉으니 나 역시 종갓집 며느리여서 그런지 편안했습니다. 맞은편의 장독을 바라보니 올해 여든 여덟이신 종부는 긴 세월 쉼 없이 일해야 했던, 겹겹이 고단함과 희로애락을 장독을 윤기 나게 닦아내므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어서 나의 발걸음은 굴뚝에 머뭅니다. 밥 짓는 연기가 빠져나가 굶는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굴뚝마저 낮게 만든 깊은 배려의 마음이 각종 변란과 환란 속에서도 위기를 비켜가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부자란 어떤 것인가? 낮은 담장 위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날던 새도 돌아온다는 운조루. 채움보다는 비움의 가치가 더 큰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낀 가을날의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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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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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3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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