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ork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에피소드, 그래픽, 팟캐스트 설명을 포함한 모든 팟캐스트 콘텐츠는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또는 해당 팟캐스트 플랫폼 파트너가 직접 업로드하고 제공합니다. 누군가가 귀하의 허락 없이 귀하의 저작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여기에 설명된 절차를 따르실 수 있습니다 https://ko.player.fm/legal.
Player FM -팟 캐스트 앱
Player FM 앱으로 오프라인으로 전환하세요!

[12/28] 한국 개신교 130년 - WCC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역사적 고찰2

55:03
 
공유
 

Manage episode 120034161 series 96409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에피소드, 그래픽, 팟캐스트 설명을 포함한 모든 팟캐스트 콘텐츠는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또는 해당 팟캐스트 플랫폼 파트너가 직접 업로드하고 제공합니다. 누군가가 귀하의 허락 없이 귀하의 저작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여기에 설명된 절차를 따르실 수 있습니다 https://ko.player.fm/legal.
WCC를 둘러싸고 한국교회 안에서 60년째 이어지고 있는 논쟁과 오해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이번 주는 세 번째 항목부터 살펴봅니다. 3. WCC의 선교유예론 이 논쟁은 WCC도 과연 선교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데, 19세기 유럽과 북미의 교회들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선교에 나서면서 서로 협력하였고 이 선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10년 세계선교대회를 열고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를 창설하였으며 1948년에 이르러 WCC를 창설하였습니다. 즉 WCC는 선교를 위해 선교현장에서 출발한 단체이므로 이런 논쟁에 이른 의혹은 불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혹의 출발은 1960년대에 본격화된 제국주의선교에 대한 논란과 이에 따라 1971년부터 지속된 선교유예 논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유예는 결의에 이르지 못했고 대안으로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즉 식민정책에 수반된 제국주의 선교정책을 반성하고 토착문화를 고려하여 선교를 모색함으로써 선교하는 자와 대상자가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게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4. WCC에는 사회구원만 있다는 의혹 WCC안에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존재하며 수평적 사회구원과 수직적 영혼구원은 늘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WCC는 냉전시대에 하나님이 뜻대로 화해를 추구하기 위하여 힘썼으나 1968년 4차 총회에는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즉 서구의 학생운동과 미국의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월남전 지속, 남미군사독재정권의 등장, 남아공의 인종차별 상황 등에 따라 사회구원이 강조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방콕선교대회에서는 개인구원과 사회참여가 조화를 이루었고 복음주의자들도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양 진영이 접촉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양 진영 모두 영혼구원과 사회참여를 통전적인 관점으로 보는 수렴이 일어나고 있어 두 진영 모두를 한쪽에 치우친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5. WCC의 게릴라 지원설 WCC는 사회 불의와 부정을 선교의 과제로 이해하고 사회참여 적극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69년 ‘인종차별정책 반대 프로그램’을 설립하였고 그 활동 중 하나로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교회를 지원하였습니다. 이에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WCC의 게릴라 지원설을 기사로 수차례 게재하였으며 그 기사의 자료는 남아공백인정권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 WCC가 용공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논거들은 주로 이 기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남아공백인정부는 ICCC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WCC를 비난하도록 하였고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옹호하도록 했습니다. 1994년 만델라가 집권하자 ICCC에 대한 남아공의 지원은 중단되었습니다. 6. WCC의 종교다원주의 논쟁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원화사회이지만 우리 신앙은 결코 다원화될 수 없습니다. WCC에 대한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1961년 인도총회 이후 전개된 ‘종교간의 대화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종교간 갈등과 정죄가 사회를 폭력과 분열로 몰아넣는 것을 보면서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4차 총회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대화와 선포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하였고 5차 총회에서는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나 혼합주의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1989년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가 ‘예수 외에 구원의 길이 없으나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채택하였고 7차 총회의 정교수 초혼제 사건, 1990년 바아르문서 등으로 인해 논쟁의 소지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WCC의 공식 입장이 아닐뿐더러 WCC의 공식입장은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므로 WCC를 종교다원주의로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유독 한국교회 안에서 WCC에 대한 논쟁이 이토록 지속되는 것은 한국의 교단중심적 이해를 가지고 WCC를 이해하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제 WCC의 대화와 충분한 학문적 자유 그리고 모든 공식 입장은 중앙위원회와 총회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를 이해해야만 한다. 정리하면 WCC는 헌장을 통해 예수 외에 구원이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는 다원화 사회로서 종교영역에 있어서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갖는 것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continue reading

99 에피소드

Artwork
icon공유
 
Manage episode 120034161 series 96409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에피소드, 그래픽, 팟캐스트 설명을 포함한 모든 팟캐스트 콘텐츠는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또는 해당 팟캐스트 플랫폼 파트너가 직접 업로드하고 제공합니다. 누군가가 귀하의 허락 없이 귀하의 저작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여기에 설명된 절차를 따르실 수 있습니다 https://ko.player.fm/legal.
WCC를 둘러싸고 한국교회 안에서 60년째 이어지고 있는 논쟁과 오해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이번 주는 세 번째 항목부터 살펴봅니다. 3. WCC의 선교유예론 이 논쟁은 WCC도 과연 선교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데, 19세기 유럽과 북미의 교회들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선교에 나서면서 서로 협력하였고 이 선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10년 세계선교대회를 열고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를 창설하였으며 1948년에 이르러 WCC를 창설하였습니다. 즉 WCC는 선교를 위해 선교현장에서 출발한 단체이므로 이런 논쟁에 이른 의혹은 불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혹의 출발은 1960년대에 본격화된 제국주의선교에 대한 논란과 이에 따라 1971년부터 지속된 선교유예 논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유예는 결의에 이르지 못했고 대안으로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즉 식민정책에 수반된 제국주의 선교정책을 반성하고 토착문화를 고려하여 선교를 모색함으로써 선교하는 자와 대상자가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게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4. WCC에는 사회구원만 있다는 의혹 WCC안에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존재하며 수평적 사회구원과 수직적 영혼구원은 늘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WCC는 냉전시대에 하나님이 뜻대로 화해를 추구하기 위하여 힘썼으나 1968년 4차 총회에는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즉 서구의 학생운동과 미국의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월남전 지속, 남미군사독재정권의 등장, 남아공의 인종차별 상황 등에 따라 사회구원이 강조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방콕선교대회에서는 개인구원과 사회참여가 조화를 이루었고 복음주의자들도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양 진영이 접촉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양 진영 모두 영혼구원과 사회참여를 통전적인 관점으로 보는 수렴이 일어나고 있어 두 진영 모두를 한쪽에 치우친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5. WCC의 게릴라 지원설 WCC는 사회 불의와 부정을 선교의 과제로 이해하고 사회참여 적극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69년 ‘인종차별정책 반대 프로그램’을 설립하였고 그 활동 중 하나로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교회를 지원하였습니다. 이에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WCC의 게릴라 지원설을 기사로 수차례 게재하였으며 그 기사의 자료는 남아공백인정권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 WCC가 용공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논거들은 주로 이 기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남아공백인정부는 ICCC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WCC를 비난하도록 하였고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옹호하도록 했습니다. 1994년 만델라가 집권하자 ICCC에 대한 남아공의 지원은 중단되었습니다. 6. WCC의 종교다원주의 논쟁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원화사회이지만 우리 신앙은 결코 다원화될 수 없습니다. WCC에 대한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1961년 인도총회 이후 전개된 ‘종교간의 대화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종교간 갈등과 정죄가 사회를 폭력과 분열로 몰아넣는 것을 보면서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4차 총회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대화와 선포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하였고 5차 총회에서는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나 혼합주의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1989년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가 ‘예수 외에 구원의 길이 없으나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채택하였고 7차 총회의 정교수 초혼제 사건, 1990년 바아르문서 등으로 인해 논쟁의 소지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WCC의 공식 입장이 아닐뿐더러 WCC의 공식입장은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므로 WCC를 종교다원주의로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유독 한국교회 안에서 WCC에 대한 논쟁이 이토록 지속되는 것은 한국의 교단중심적 이해를 가지고 WCC를 이해하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제 WCC의 대화와 충분한 학문적 자유 그리고 모든 공식 입장은 중앙위원회와 총회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를 이해해야만 한다. 정리하면 WCC는 헌장을 통해 예수 외에 구원이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다만 우리 사회는 다원화 사회로서 종교영역에 있어서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갖는 것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continue reading

99 에피소드

모든 에피소드

×
 
Loading …

플레이어 FM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플레이어 FM은 웹에서 고품질 팟캐스트를 검색하여 지금 바로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최고의 팟캐스트 앱이며 Android, iPhone 및 웹에서도 작동합니다. 장치 간 구독 동기화를 위해 가입하세요.

 

빠른 참조 가이드